부자 원하면 하녀노릇도…금융권엔 무슨일이

부자 원하면 하녀노릇도…금융권엔 무슨일이

입력 2011-08-26 00:00
수정 2011-08-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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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하지원이 입고 나온 케이프(망토) 코트를 사고 싶은데요. 신민아가 ‘강심장’에 출연할 때 입은 밀리터리 점퍼는 어느 브랜드 제품인가요?”

 패션에 관심이 많은 30대 여성 A씨는 TV에 출연한 연예인이 입은 옷이 사고 싶을 때 옷가게가 아닌 삼성카드에 전화를 건다. A씨의 요청을 접수한 프리미엄 마케팅팀 내 ‘라움’ 컨시어지 데스크 매니저는 “고객님, 바로 구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바쁘게 움직인다. 먼저 연예인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에게 연락해 그 옷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임을 확인한다. 프랑스 본사에 전화를 걸어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관세를 포함한 옷의 가격을 A씨에게 알린다. 옷 값을 결제를 하면 2~3일 후 배송이 완료된다. A씨는 한달에 2번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구입하고 있다. 연회비가 200만원인 신용카드 라움의 회원이라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부자 고객을 사로잡으려는 금융권의 쟁탈전이 뜨겁다. 경기가 나쁘고 시장이 불안할수록 금융회사가 믿을 수 있는 건 수입이 안정적인 부자 뿐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한국의 부자는 13만명. 이런 ‘슈퍼리치’ 유치를 위해 금융회사들이 꺼내 든 카드는 컨시어지(concierge)다.

 컨시어지는 중세시대의 집사 또는 하녀를 일컫는 말로 어떤 부탁이든 척척 들어주는 해결사 서비스를 뜻한다. 금융상담을 해주는 고객센터가 아니라 시시콜콜한 요청까지 해결해주는 일종의 심부름센터인 셈이다.

 금융권에서 컨시어지 서비스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국민은행이다. 2008년 9월 ‘스타아우름서비스’를 시작했다. 총 예금액이 3개월 평균 5억원 이상이고 월 평균 이익이 500만원 이상인 기업고객 임원 등이 가입대상이다.

 카드업계는 연회비 100만원 이상의 초우량 고객(VVIP) 카드 회원에게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카드의 라움과 현대카드 ‘더블랙’의 격돌 양상이다. 삼성카드는 2009년 10월 라움 출시를 위해 벤츠,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업체와 하얏트, 인터컨티넨탈 등 유명 호텔의 서비스 직원 13명을 영입하고 컨시어지 전문 업체인 퀸터센셜리와 업무 제휴를 맺었다. 현대카드도 같은 해 5월 24시간 고객 상담을 해주는 컨시어지 데스크를 신설했다.

 증권업계도 올해부터 컨시어지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4월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맡긴 최우수 고객인 ‘프리미어 블루 멤버스’를 대상으로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대증권도 5월 ‘QnA 프리미어 멤버스’를 내놓고 6000명의 VVIP 고객에게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심부름 서비스에 대한 인식은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한번 이용해보면 큰 만족감을 느끼고 또 찾는다고 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지난해 라움 회원의 80%가 컨시어지 서비스를 1번 이상 이용하고 전체의 60%는 2번 이상 이용했다.”고 전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2000명의 블랙 회원 가운데 약 40%가 서비스를 이용했다.”면서 “첫 해에는 1000건의 서비스가 제공됐으나 올해 말이면 누적 건수가 8000건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는 월 평균 1000건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호텔과 항공권 예약과 레스토랑, 와인 추천 등을 부탁한다. 기상천외한 요청도 많다. TV 방송프로그램인 ‘방귀대장 뿡뿡이’에 4살 짜리 아들을 출연시켜 달라는 40대 부부도 있었다고 한다. 회사 복장제도가 정장에서 비즈니스 캐주얼로 변경돼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대기업 상무에게 스타일리스트를 섭외해주기도 했다. 해외 출장을 위해 인천공항에 갔던 기업체 대표가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을 들고 왔다며 도움을 요청하자 정상 여권을 배달한 사례도 있다.

 업무 관련 부탁도 쇄도 한다. 삼성카드는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지진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외 바이어 접대업무를 일체 위임하기도 한다. 우리투자증권은 이슬람권 바이어를 위해 호텔을 예약하면서 객실의 성경책을 모두 치우고, 바이어가 좋아하는 망고를 준비한 것은 물론 이슬람 율법을 지키는 식당을 예약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국내 금융권의 컨시어지 서비스는 전부 공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컨시어지 전문업체를 통해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연간 1000만원의 비용을 내야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시계, 자동차 등 고가 물품의 구매를 원하는 고객의 요청을 해결하면 카드 할부 매출 증대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최우수 고객은 상대적으로 충성도가 높다.”면서 “이들이 컨시어지 서비스에 만족하면 이탈하지 않고 계속 자산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앞으로 슈퍼리치를 위한 심부름 서비스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자 고객은 일반 대중과 달리 성향이 제각각이라 정형화된 서비스로 공략하기 힘들다.”면서 “미국, 영국 등의 프라이빗 뱅크들도 맞춤형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국내에도 충분한 고객 니즈(요구)가 있기 때문에 서비스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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