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전문가 “상하이에만 일본군위안소 160곳 이상 운영”

中전문가 “상하이에만 일본군위안소 160곳 이상 운영”

입력 2014-08-12 00:00
수정 2014-08-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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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중국 침략 시기 상하이(上海)에 일본군 최초의 위안소를 비롯해 총 160곳 이상의 군 위안소가 설치·운영됐다는 중국 측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 쑤즈량(蘇智良) 주임은 11일 상하이에서 열린 ‘8·13 사변(1937년 상하이 군민이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투)’ 77주년 좌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2일 전했다.

쑤 주임은 “우리가 지난 21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제 침략 시기 상하이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소는 모두 160곳 이상으로,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가장 완벽하게 갖춰진 도시였다”고 말했다.

그는 1932년 1월 일본 해군 육전대사령부가 해군 특별위안소로 지정한 상하이 훙커우(虹口)구의 ‘대일살롱(大一沙龍)’ 등 일본인 개설 여관 4곳이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에서 일본 해군 육전대와 중국 제19로군이 수개월간 교전한 ‘1·28 사변’이 터졌고 당시 일본 육군 상하이 파견군의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부참모장이 해군의 방식을 본떠 육군에도 위안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카무라는 일본 관서지방에서 여성들을 징발해 육군 최초의 ‘위안부단’을 만들었고 우쑹(吳淞), 바오산(寶山) 등 전방 주둔지에 위안소를 세웠다는 게 쑤 주임의 설명이다.

그는 이 ‘위안부단’이 이후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본보기가 됐으며 일본군이 중국 동북지역을 점령한 뒤 곳곳에 세운 군 위안소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쑤 주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악명 높은 군사 성노예 제도인 군 위안부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본격적으로 확산했고 상하이 곳곳에도 일본군의 ‘합법적인 강간센터’인 군 위안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간 수십만 명의 중국 여성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쑤 주임은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군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과 ‘고노 담화’ 흔들기 문제를 지적하며 “일본이 심각한 반인권 범죄인 일본군 성노예 제도에 대해 아직도 깊이 반성하지 않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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