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뒤늦은 AIIB 가입 결정 안팎
일본 정부가 8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가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이 조직이 국제금융기구로서의 순조로운 출범이 가시화되는 등 가입이 대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AIIB는 창립회원국 가입 신청 마감일인 지난달 말 기준으로 한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2개국이 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주요 국가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서방 주요 국가들까지 참여하는 등 국제금융기구로서의 순항이 확실시된 이상 중국 주도로 방치하느니 적극적으로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견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국제금융기구의 규범을 적용해 ‘중국 정부의 산하기구인 AIIB’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서 운영해 나가는 데 일익을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및 서방 주요 국가들과의 공동 보조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크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들이 이날 “미국 및 주요 7개국(G7) 등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중국에 기구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보도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앞으로 AIIB의 이사회 구성과 의결 제도, 국가별 의결권 배분 등 운영 방식, 조직의 수장 및 주요 정책 결정자 선출 기준 등을 꼼꼼하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일본이 참가하지 않으면 중국 시장은 물론 중앙아시아 개발 등에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란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15억 달러의 기금을 출연하더라도 이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라고 교도통신은 지적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 기존 국제기구의 기준과 틀을 준용해 AIIB를 운영해 나가고 통제하겠다는 의지도 크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 6일 AIIB의 출범을 환영하고 적극 돕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오는 6월 초 열리는 일·중 재무장관회담에서 AIIB 문제를 초점으로 삼고 조직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확약을 중국 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앞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지난 6일 한 강연에서 일본 정부의 AIIB 참여와 관련해 “선진국으로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기본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는 안건”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는 “참가하지 않으면 소외된다”는 주장과 “적지 않은 돈을 내고도 그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2015-04-0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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