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나’ 펴낸 신학자 김근수씨 “교황청 ‘한국 이벤트 준비’ 판단”
“한국은 교황 프란치스코를 윤리 교사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개혁가의 면모를 이해하지 않고 선한 말과 행동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를 반쪽만 아는 겁니다.”교황 관련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교황 방한에 맞춰 관련 책이 봇물처럼 쏟아지지만 신학자 김근수(54) 씨의 ‘교황과 나’(메디치 펴냄)는 화젯거리 일색인 이전 책들과 사뭇 다르다.
저자는 16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교황의 메시지를 온전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교황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방한을 계기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국민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교황청도 최근 한국천주교 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방한 행사는 교황의 메시지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므로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에 귀기울여달라”고 이례적인 요청을 한 바 있다.
교황청 내부 사정에 밝은 김씨는 “한국의 준비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교황 방한을 화제성 이벤트처럼 여긴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 자신도 얼마 전 교황청의 지인을 통해 교황에게 “한국 천주교가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편지를 받아 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김씨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광주가톨릭대학과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신약성서를, 남미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예수회 소속의 세계적 신학자 혼 소브리노의 가르침을 받은 아시아 최초의 제자다.
그는 첫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을 대통령만 바뀐 정부에 빗대어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중앙정부 수장, 즉 대통령만 바뀐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도지사와 군수, 입법·사법 영역은 여전히 다른 기조를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한 레오 13세,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개혁의 기틀을 마련한 요한 23세에 이어 세 번째 ‘개혁 교황’으로 꼽힌다.
프란치스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품을 받은 사람 가운데 최초로 교황에 선출됐다. “우리로 치면 한자 대신 한글을 전격 채택한 한글세대 같은 존재”라고 김씨는 설명한다.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옆에 서 있으면서 사회와 교회 개혁을 역설한다.
김씨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의 말과 삶을 골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태도다. 교황의 성품이나 개인 윤리, 신심은 받아들이고 선전하지만 개혁 프로그램은 철저히 외면하는 행태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런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면서 “교황을 윤리, 도덕 교사로 격하, 폄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천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에 사는 게 맞나 싶다라고도 했다.
”교황이 개혁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복음의 기쁨’을 발표하든 말든 자기 방식대로 교구를 운영하는 주교들이 많고, 교황이 검소하게 살든 말든 버젓이 골프장을 드나드는 사제가 수두룩합니다.”
국내 천주교 신자의 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30%가량 늘었다. 가톨릭이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가 스스로 워낙 점수를 까먹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그러면서 교황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 위해 ‘십일조’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교회 재산과 수입, 지출을 지금의 10분의 1로 줄이자는 것이다.
그는 “가톨릭이 2천년 이상 조직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혁신 덕분이었다”며 “한국 천주교는 더 이상 외딴 섬으로 남지 말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개혁과 진보를 향한 한국 교회의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과정이 적잖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과가 몹시 기대가 됩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