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더니즘 1세대 작가 문학진 26년만에 개인전
“마음이야 지금도 붓을 잡고 싶지요. 그런데 이제는 망가져서 그림을 더 그릴 수가 없어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정물과 인물을 더 그리고 싶어요.”구순(九旬)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 창작의 열정을 태웠던 문학진(91·서울미대 명예교수) 화백. 그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조건이 되지 않는다. 2년 전 넘어져서 골반에 인공관절을 넣는 대수술을 받은 뒤 몸이 급속히 쇠약해진 탓이다. 그래도 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실을 찾아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문 화백은 1953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한국 미술 교육 1세대 작가로 일찍부터 1950년대 국전의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벗어나 추상 형식을 도입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이후 인물과 정물을 주요 소재로 선택해 간략하게 변형하고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화면에 재배치함으로써 반추상적 화면을 구성했다. 안정된 구도와 무채색 기조의 차분한 색감이 빚어낸 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에는 추상적 형태와 색의 배치에 따르는 질서와 통합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전시를 마련한 현대화랑의 박명자 회장은 문 화백에 대해 “1960년대 반도화랑 근무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박수근, 손응성, 윤중식 작가 등과 함께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중요한 작가”라며 “오랜 세월 이어 온 예술 열정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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