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이순규 할머니, 6·25때 청주서 헤어진 남편 65년만에 상봉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에 사는 이순규(사진, 84) 할머니는 요즘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아주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고 믿었던 남편이 북녘땅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이 할머니는 외아들 오장균(65)씨와 함께 오는 20∼22일 금강산에서 65년 전에 헤어져 희미한 기억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잘생긴 10대로만 남아 있는 남편 오인세(83)씨를 만난다.
할머니는 남편이 죽을 줄로 알았다. 이 때문에 37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았던 남편과 아버지가 살아 있고, 그를 곧 만난다는 소식에 남녘 가족들은 매우 감격해 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14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칠 때마다 꺼내봤다는 남편의 소지품을 자랑하듯 펼쳐보였다.
소지품들은 작은 나무상자에 잘 정돈돼 있었다.
할머니는 오래된 놋그릇과 구두, 장기알 등 남편의 체취가 밴 소지품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남편과 헤어질 당시를 회상했다.
”청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결혼 이듬해에 6·25 전쟁이 났어요. 동네 사람이 10일만 훈련받고 보내준다고 데려갔는데 그 길로 헤어졌지요”
할머니의 눈가에 엷은 이슬이 맺혔다.
1949년 12월 당시 동네에서 인물 훤하다는 말을 들었던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은 지 불과 7개월 만인 1950년 7월의 일이었다.
훈련받으러 간 곳이 어디인지, 참전했는지, 남편이 왜 북녘에 있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를 일이다.
할머니는 이후 고달픈 삶을 살았다.
전쟁통에는 시부모와 핏덩이 같은 아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피란을 다녔다. 남편 없는 삶이 힘들었지만, 생활력 하나는 누구보다 강했다. 베를 짜 받은 품삯으로 시부모를 공양하고 아들을 홀로 키웠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
며느리 이옥란(65)씨는 “항상 시아버님의 소지품을 깨끗하게 관리하셨다. 아버님을 그리워하실 때마다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한평생 보고 싶었던 거야 말로 다 못한다. 아들도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못했다”며 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아들 오씨도 눈물을 보였다.
그는 “만나뵈면 당신의 아들이 이만큼 성장해서 잘살고 있다고 알려 드리고, 홀로 자식을 위해 사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힘있게 안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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