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구타 사망 파문] “死因은 언제나 개인의 부적응… 국가도 부대도 아들을 버렸다”

[윤 일병 구타 사망 파문] “死因은 언제나 개인의 부적응… 국가도 부대도 아들을 버렸다”

입력 2014-08-11 00:00
수정 2014-08-11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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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오열하는 軍의문사 가족들

“무능한 부모라는 생각,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10년 동안 나를 짓눌렀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을 위한 추모제’에 참석한 한 어머니가 군에서 잃은 아들의 영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을 위한 추모제’에 참석한 한 어머니가 군에서 잃은 아들의 영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강수종(69)씨는 12년 전 의경으로 복무 중이던 아들을 잃었다. 불과 스무 살이었다. 최근 선임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숨진 육군 28사단 윤모(21) 일병과 또래다. 강씨는 윤 일병의 사망 보도를 접하고 가장 먼저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씨는 “국방의 의무란 이름으로 자식들을 데려가 놓고 막상 사망 사건이 터지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당국의 태도가 12년 전과 똑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에도 유가족과 군 인권센터의 노력이 없었다면 윤 일병의 죽음은 묻혔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부대 간부들의 관리 책임은 교묘하게 지운 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어떻게든 은폐, 축소하려는 사건수습 방식도 10여년 전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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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사망 강신일 이경
2002년 사망 강신일 이경
강씨의 아들 강신일 이경은 2002년 3월 의경으로 입대해 같은 해 5월 17일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75중대에 배치됐다. 불과 8일 뒤 강 이경은 송파구 국립경찰병원 인근 아파트 25층에서 몸을 던져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강 이경은 전입 바로 다음날부터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선임대원들은 ‘목차려’(침상에서 목, 팔, 다리를 들고 ‘V’자 자세로 엉덩이로만 버티도록 하는 가혹행위)를 시켰고 “여자친구랑 어떤 자세로 자 봤느냐”는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 강 이경은 선임 대원들의 기수와 이름, 무전 암호를 외우지 못할 때마다 구타를 당했다. 선임대원들은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때까지 밥을 퍼먹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강 이경 사건을 조사한 송파경찰서는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투신, 자살했다”며 내사종결했다. 강씨는 2007년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그 결과 중대 소속 간부들의 은폐 시도가 확인됐다. 간부들은 강 이경의 자살 직후 대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또 조사를 받을 때 ‘안 때렸다, 안 괴롭혔다, 정말 잘해줬다’는 말을 하도록 시켰다.

군의문사위는 “(송파경찰서는) 선임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고 신병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한 지휘관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경찰은 아들의 나약한 성격을 지목하며 부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쪽으로만 몰아갔다”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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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사망 서승완 일병
2002년 사망 서승완 일병
고 서승완(당시 22세) 일병은 2002년 2월 육군사관학교 근무지원단 보급근무대로 전입했지만 같은 해 5월 영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육사 헌병대와 육군본부는 서 일병이 “좌측 발목 아킬레스건염 및 허약 체질, 군 복무 부적응 등으로 자살했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역시나 ‘부대 관리 소홀’은 빠져 있었다.

서 일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한 선임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밝혀낸 건 군 당국이 아닌 작은아버지 서모(57)씨였다. 그는 “헌병대에서는 승완이가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타다가 발뒤꿈치가 바퀴에 걸려 아킬레스건을 다친 일을 ‘지병’으로 몰고 갔다”면서 “입대 전까지 큰 불편이 없어 진료를 받은 적도 없는데 입대 후 ‘구보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을 꼬투리 삼아 지병으로 우울증이 심해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승완이의 죽음과 구타 간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에 가해자 및 부대 지휘관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서씨의 노력으로 군의문사위는 “간부들의 부적절한 부대 관리”를 사인에 추가했고 서 일병은 순직 처리됐다.

“국가가 불렀다면 군 복무 중 다쳤든, 죽었든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개인 잘못으로 치부하기 일쑤죠. 자살하거나 구타로 숨진 병사들을 ‘부대 미적응’ 운운하며 모욕합니다. 징병검사에서는 현역 판정을 내려놓고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면 당사자 개인 탓으로 돌립니다. ‘자식이 못나서 군대에서 죽은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 것이 군·경 의문사 유가족들입니다.” 서씨는 조카의 죽음과 윤 일병 사건이 ‘판박이’라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4-08-1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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