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대피하려고 ‘음주운전’한 차주 2심서 무죄…”긴급피난에 해당”
대리운전 기사가 말다툼 끝에 차에서 내려버리는 바람에 도로 한가운데 놓인 차를 대피시키려고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한 것은 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2013년 11월22일 고등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신 송모(44)씨는 자정을 넘긴 시간쯤 집으로 돌아가려고 친구 2명을 자신의 차에 태워 서울 송파구, 성남 분당구, 용인 기흥구 순으로 경유해 가기로 하고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일행 중 한명을 송파구에 내려준 뒤 분당으로 가는 도중 송씨는 대리운전기사와 경로문제로 말다툼을 하게됐고, 급기야 기사가 분당구 황새울로의 한 사거리를 앞두고 차를 세우고 말았다.
차는 편도 3차로 중 2차로 위에 수분간 세워졌고 안전사고를 우려한 송씨는 기사에게 “차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기사는 되레 “손님이 차키를 빼앗아 도로 가운데 있다”며 112에 신고한 뒤 차에서 내려버렸다.
송씨는 인도에 서있는 기사에게 다시한번 차를 이동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어쩔 수 없이 10m 떨어진 교차로 우측 도로변으로 차량을 옮겨 주차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기사는 재차 “(손님이) 음주운전도 했다. 빨리 와달라”며 112에 신고했고, 결국 송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59%인 상태로 음주운전한 혐의로 기소돼 작년 10월8일 1심 재판부로부터 벌금 150만원에 대한 기소유예 선고를 받게 됐다.
송씨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주차 한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직접 차의 시동을 껐고 대리기사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한 점”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송씨의 행위가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긴급피난에 해당한다며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수원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최규일)는 “피고인이 차 시동을 끄고 기사에게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나 기사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차를 움직이지 않고 세워뒀을 때부터 이미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차가 멈춘 곳은 교차로 직전에 위치해 사고 위험이 높은 지점이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당시 상황에서 동승자들도 술에 취했기 때문에 피고인이 직접 차량을 운전해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고 피고인은 사고의 위험을 줄이려고 도로변으로 차를 이동시켰을 뿐 더이상 차량을 운전할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침해되는 사회적 법익보다 그로 인해 보호되는 피고인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 및 신체에 관한 법익이 더 우월한 법익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