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건만 10여년째…3차례 특진한 진짜 ‘베테랑’

마약 사건만 10여년째…3차례 특진한 진짜 ‘베테랑’

입력 2015-10-20 07:19
수정 2015-10-2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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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택 서울 광수대 마약팀장 “마약사범 단속보다 치료 필요해”

2006년 가을 어느 날 서울 동대문구 용답동의 한 빌라 지하 출입구 앞에서는 쌀쌀한 날씨 속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빌라 좌우 벽에 남성 8명이 권총을 빼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늘어섰다. 한참을 기다려 지하 출입구 문이 열리자 일사불란하게 총구를 들이밀며 외쳤다.

“손들어, 경찰이다!”

경찰관들의 살갗에 차가운 바깥과는 아주 대조적인 따뜻한 실내 공기가 느껴졌다. 코로는 역겨운 인(燐) 냄새가 덮치듯 끼쳐왔다. 필로폰 제조 현장의 전형적인 공기와 냄새였다.

범인들은 체념한 듯 순순히 경찰의 명령에 따라 벽에 손을 대고 뒤돌아선 채로 검거돼 연행됐다.

경찰이 1주일여 잠복한 끝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제 마약이 제조되는 현장을 덮쳐 제조자들을 검거하는 순간이었다.

제조자들이 필로폰을 만드는 족족 팔아치운 탓에 현장에서 압수한 필로폰의 양은 12g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약 400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현장에서 검거된 제조자는 3명에 불과했지만 판매책과 단순 투약자 등까지 추적하니 검거자는 70여명에 달했다.

당시 수사를 벌인 마포경찰서 마약전담팀을 지휘한 사람은 지금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1팀을 지휘하는 오상택 팀장이다.

19일 서울 용두동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오 팀장은 “당시 제조범들은 미국에 불법체류하다 추방된 이들이었다”면서 “이들이 만든 마약을 구입한 사람 중에는 원어민 영어 강사들도 많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 팀장은 1989년 강서경찰서에서 형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10여년은 강력사건을, 나머지 10여년은 마약사건을 맡아온 ‘베테랑’이다. 지금까지 4차례 승진 중 경장, 경사, 경감 등 3차례 승진을 특진으로 장식할 정도로 능력 인정받는 경찰이다.

마약 수사를 하면서 위기일발의 순간도 많았다. 2007년에는 마포경찰서 오 팀장이 이끄는 팀원이 부산에서 마약 판매책을 검거하려다 아찔한 일을 겪었다.

한 팀원이 구매자를 가장해 판매책이 운전하는 차량 뒷좌석에 탄 상태에서 다른 팀원이 차량 문을 열려고 하자 판매책이 급출발해 돼지국밥 집이 늘어선 골목길을 질주한 것이다.

다행히 차에 탄 팀원이 금세 뒤에서 판매책의 목을 졸라 제압하고 차량을 세웠다. 다시 500∼600m를 달린 끝에 판매책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오 팀장이 이끄는 팀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마약사범을 검거한 수사팀으로 떠올랐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팀은 2008년 고스란히 서울경찰청 광수대 마약수사계로 옮겼다. 오 팀장을 포함해 팀원 6명 중 5명이 그대로 자리를 옮긴 파격적인 인사였다.

오 팀장의 활약은 서울청으로 옮겨서도 계속됐다. 2009년에는 필로폰과 엑스터시, 케타민 등 마약을 밀반입한 배우 윤모(당시 28세·여)씨와 영화배우 주지훈(당시 27세)씨 등 연예인을 포함한 84명을 적발했다.

당시만 해도 신종 마약이었던 케타민은 발견 당시 검증 시약기가 없었는데 오 팀장의 팀이 단속한 것을 계기로 시약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1년에는 아프리카에서 마약 1㎏을 밀반입한 일당을 검거하고 나서 인천 부평에서 마약을 판매한 폭력조직과 투약자들을 검거해 경감 특진을 하기도 했다.

서울청 광수대는 최근 영화 ‘베테랑’의 소재가 되면서 국민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진짜 베테랑 오 팀장에게 영화 베테랑에서 나온 것처럼 코를 킁킁거리는 것을 보고 마약 투약자임을 알 수 있는지 묻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약을 하게 되면 코를 킁킁거리기도 하고 땀을 많이 흘리며 입이 마르니 자주 쩝쩝댄다”면서 “특유의 냄새도 나는 데다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는 등 특징이 있어 한 전문가들은 마약 투약자를 한눈에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여년 동안 마약 수사를 한 그는 한국이 ‘마약 청정지역’에서 ‘마약 위험지역’으로 바뀐 것 같다며 마약 범죄가 일반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과거에는 마약사건이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였지만 지금은 심한 경우 중학생들도 적발될 정도로 마약사건이 흔해졌다”면서 “올해만 해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검거한 마약사범 수가 10%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도 점차 낮아져 중·고등학생도 마약 때문에 검거되는 일이 흔하고 유학생 출신의 한 고등학생은 ‘주변 유학생 중 고등학생은 80% 이상, 대학생은 100%가 마약을 한다’고 진술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재범률이 80% 정도로 높은 마약 사범을 단속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적절한 시설을 만들어 의학적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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