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블로그] 고맙습니다, 고된 살림에 힘이 된 ‘수녀님 도시락’

[현장 블로그] 고맙습니다, 고된 살림에 힘이 된 ‘수녀님 도시락’

이성원 기자
입력 2016-08-23 23:24
수정 2016-08-2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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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지 독자 투고 담당자 앞으로 편지 하나가 왔습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이동만(82)씨가 보낸 손편지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 노르께한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글씨로 사연을 풀어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6월 10일부터 수영구 광안1동에 있는 사랑의성모 수녀회에서 ‘무지개 도시락’을 배달받는데, 진수성찬을 대접받으니 ‘벼락부자’가 된 것 같다는 겁니다. 첫날부터 시래깃국과 멸치볶음, 나물무침으로 포식했는데, 시래깃국은 옛날 어머니가 해 주시던 맛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후 카레라이스와 소고깃국, 추어탕, 북어를 넣은 계란국 등 한결같이 맛있고 푸진 도시락이었다고 합니다.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삼계탕도 수녀님 덕에 세 번이나 드셨답니다.

이씨는 7년 전 콩팥 수술을 받은 아내를 수발하며 살림하느라 매일 반찬 걱정을 했는데 도시락 덕에 한시름 덜었다고 합니다. 식비도 줄었습니다. 매달 기초수급자 지원금으로 62만원을 받는데, 이 중 식비가 30만원 정도였답니다. 이씨는 “나라님도 마음대로 인상 못 해 주는 생계비를 수녀님이 대폭 인상해 주셨다”며 희망이 생겼다고 합니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 수녀회에 연락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한사코 취재를 마다했습니다. 수녀회는 ‘사조직’이라 언론에 공개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얘기를 들려줄 사람을 수소문해 이 수녀회에서 7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는 한 의류업체 직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수녀회가 설립된 이후부터 줄곧 수녀님 4분과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소외된 이웃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독거노인 등 80여 가구를 지원하고,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치유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홍보’의 시대라고 합니다. 자신의 장점을 적극 알려야 남들이 알아준다는 것이죠. 그러나 선행을 알리든 알리지 않든, 선행의 의미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받는 이에겐 행복을 주고, 다른 이들에겐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분명합니다. 신앙이나 종교의 힘을 초월해서 말이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6-08-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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