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에 가축 12만 마리 폐사
일부 축사 내부 기온 36도 웃돌아전남 피해액 10억 이상으로 ‘최대’
어제 하루만 2만마리 폐사하기도
가뭄 기승… 강릉 저수율 34% 그쳐

제천 연합뉴스
찜통더위 속 휴식
폭염경보가 내려진 9일 낮 충북 제천시 수산면의 한 적채(붉은 양배추)밭에서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날 제천의 낮 최고기온은 33도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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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안 온도계가 아침부터 36도를 넘겼습니다. 닭들이 바닥에 픽픽 쓰러져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갔어요. 하루하루가 고비입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축산농가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전국 곳곳의 축사 내부 기온이 36도를 웃돌면서 닭·돼지·오리 등 가축들이 생존 임계온도를 넘겨 무더기로 폐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일 기준 역대 최대 피해가 발생하며 지자체들이 긴급 예산을 투입,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9일 각 자치단체에 따르면 전남·충북·경남·경북 등 4개 도에서 폭염으로 인한 가축 폐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집계된 폐사 개체수는 총 11만 9137마리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만 918마리가 전남에서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10억 83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남 곡성군 석곡면은 이날 낮 최고기온이 37도를 기록, 도내 최고치를 찍었다. 이로 인해 하루 만에 14개 농가에서 1만 9823마리가 폐사했으며 피해액만 3억 3400만원에 달한다. 올여름 들어 일일 기준 최대 피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충북에서는 16개 농가에서 1만 4185마리, 경남에선 138개 농가에서 2만 236마리, 경북에선 82개 농가에서 2만 3798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닭이다. 닭은 땀샘이 없고 깃털로 덮여 있어 체열 발산이 어려워서다. 곡성에서 양계장을 하는 김모(63)씨는 “체감온도가 오전부터 40도 가까이 치솟아 냉풍기와 얼음주머니까지 동원했지만 이틀 새 400마리 넘게 죽었다”고 말했다.
한우 농가도 예외는 아니다. 전남 나주의 한 농민은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채 쓰러지는 송아지를 안고 울었다”며 “냉방장비와 약품 지원 등 실질적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자체들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전남도는 본예산 17억원에 예비비 20억원을 추가해 총 37억원 규모의 고온 스트레스 완화제를 긴급 지원하고 있다. 수산양식 분야도 해수 온도 상승에 대비, 실시간 수온 관측과 사전 예찰을 강화 중이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도 강원과 제주에서 극심해지고 있다. 이날 현재 강원 강릉 11개 저수지 평균 저수량은 34.1%로 평년(69.1%) 대비 절반 수준이다. 강릉 사천저수지 저수량은 평년(83.8%)의 4분의1에도 못 미치는 20.6%에 그쳤다. 강원 속초에 있는 저수지들도 저수율이 20대%로 떨어졌다. 강원 정선군 임계면에서 밭농사를 짓는 박상봉(33)씨는 “고추는 열리지 않고 있고, 콩은 대부분 쭉정이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행란 전남농업기술원장은 “폭염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생명과 식량, 경제를 위협하는 복합 재난”이라며 “축산·수산·농업뿐 아니라 취약계층 건강관리까지 포괄하는 통합대응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5-07-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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